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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is The Great Play

Micah Rally [詩] 2nd Ep. 왈츠

같이 왈츠를 추고 싶어 손을 내밀어 고운 코를 두드렸다 겨울 요정들의 왈츠가 흩날린다 그 찰나를 모두 바치고 싶었다 내밀었던 나의 손 요정들이 내려와 앉았을 때 빛가루 같은 왈츠를 추고 싶었다 왈츠는 없었다 손은 허공에서 멈..

내일이 짧아진다.

오늘은 길다. 오늘은 참 길다. 오늘 오늘 오늘. 오늘은 늘 길고 지루하다. 그래서 내일이 짧아질 거란 허무맹랑한 기대를 한다. 안경에 김이 서린다. 중부지방 한파. 기록적인 폭설. 103년 만의 최대 적설량. 나는 이 절호의..

아프리칸티티새

아프리칸 티티새는 희망봉에서 지브롤터까지 쉬지 않고 날고 있다. 깃털도 없고, 부리도 없다. 날개와 다리, 눈 만을 믿고 날고 있을 뿐이다. 티티새를 붙잡지 말아달라.

무관심이란.
무관심이란. 2010/01/01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오랜만에 찾아간 나의 모교회에서, 여러 사람과 신년 인사도 나누면서, "그래. 난 너무 나만 생각하며 살았다." 라고 생각했다. 여러 사람과 최대한 웃으며 인사하고, 최대한, 의연한 모습으로, 그래,..

내일이 짧아진다.

일종의정신병 2010/01/09 21:35 by filmical

오늘은 길다. 오늘은 참 길다. 오늘 오늘 오늘. 오늘은 늘 길고 지루하다. 그래서 내일이 짧아질 거란 허무맹랑한 기대를 한다.
안경에 김이 서린다. 중부지방 한파. 기록적인 폭설. 103년 만의 최대 적설량.
나는 이 절호의 시기에 영화를 찍지 못 해 아쉬워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에 맞춰 추위는 내 외로움을 부채질한다. 부글부글. 추위 주제에 끓게 만들다니 괘씸하다. 무찌르고 싶다.

안경에 김이 서린다. 노량진 역 서울방향 10-1에서 열차를 기다리면서 안경에 김이 서린다.
그 김 서림은 열차에 오른 뒤에도 한참 지속된다. 김서림은 오래 지속된다. 김서림이 불어로 뭘까?

열차 문이 닫히고 우리집 현관이 열린다. 나는 문득 내 방과 그대의 방을 번갈아 쳐다본다. 여전히 안경에는 김이 서려있다.
서려 있는 김을 유지하고 싶어서 집을 계속 춥게 유지한다. 덕분에 난방비는 1587원. 씻을 때는 따뜻하게 씻어야지 않겠나?

내 안경은 명쾌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난 내 네 개의 눈으로도 똑바로 보지 못 하고 있다. 차라리 계속 김이 서려있는 것이 낫다.
그렇게 다시 난 그대의 방을 바라 본다. 그리고 옷을 벗는다. 유일하게 나를 향해 짖어주는 강아지 지니 앞에서.


양치질을 하다가 잇몸에서 피가 나온다. 입을 깨끗하게 헹구고, 치실로 치아를 깨끗하게 한다.
치실. 그래. 그대는 내게 계속 치실을 쓰라고 했었다. 난 이제 치실을 사용한다. 난 씻다가 말고 다시 그대의 방을 바라 본다.
안경에는 김이 서려있다.


그리고 난 다시 씻는다. 손도 박박, 사타구니도 박박, 겨드랑이도 박박, 얼굴은 손가락 끝으로.



그대는 그랬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알아? 당신은 거기 나오는 선생님 같아. 답답하고 고리타분하지만 귀여워. 그래서 사랑해."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너무 기뻐서 울었다. 안경에 김이 서렸다.



하지만 지금 이게 다 뭘까? 다시 난 그대의 방을 바라본다. 그리고 내 방으로 들어 간다. 그리고 그대가 누워있다.




그대의 목을 바라본다. 내가 정말 그랬단 말인가? 믿을 수 없어 안경에 김이 서린다. 





그리고 내 안경은 피로 뒤덮일 것이다.

지니에게 오늘은 고기를 먹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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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이란.

일종의정신병 2010/01/01 03:21 by filmical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오랜만에 찾아간 나의 모교회에서, 여러 사람과 신년 인사도 나누면서,

"그래. 난 너무 나만 생각하며 살았다."

라고 생각했다. 여러 사람과 최대한 웃으며 인사하고, 최대한, 의연한 모습으로, 그래, 난 거만하게 그렇게 앉아있었다.


허세였다.


친구의 아버님과 인사하던 때 였다.

"어 홍래야."

그 분은 가족 없이 혼자 오셨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려는데,

"홍래야. 넌 행복한 거야. 넌 네가 기도한 대로, 다 이루어지잖아?"


.... 놀랐다. 그 분은, 여태 살면서, 그래 반 백년을 조금 넘게 사시면서, 주님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셨다.
그리고 가족이 교회에 나오길 계속 바라며, 교회도 계속 옮기면서, 가족을 위해 교회에 꿋꿋하게 나오셨다.

그리고 난 벌써 몇 개월째, 그 교회를 출석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내게 하시는 거다.
난 기도한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청년인거다.

일순간 부끄러워져서, 짓고 있던 웃음을 어색하게 유지한채로 그 분의 덕담아닌 덕담을 계속 들었다.

난 나 혼자 교회 다니지 않는다. 물론 나의 아버지는 다니지 않고, 그게 우리 가족 필생의 기도제목이지만.

그런데, 내 친구 아버님.
그 분의 가족, 나의 친구를 비롯한, 어머님과, 둘째 녀석, 모두 아버님의 말을 듣지 않고,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내가, 아들 녀석한테 교회 나오라니까, '가서 쓸데 없이 뭐하냐' 라고 그래. 그래서 난,
'넌 그럼 교회 애들이 쓸데 없는 짓 할 때 뭐하냐?' 라고 하니,
'친구들이랑 피시방 가서 놀아요.' 라고 하는 거야. 참 나, 난 그 때, 그래, 이것들 그냥, 신경을 꺼버려야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뭔 줄 아니? 무관심. 관심이 없어지는 거야.
나, 55년을 살면서, 교회 열심히 다니면서, 가족이 교회 다니길 기도하면서, 계속 노력했거든?
근데, 그렇게 생각이 박혀 버린 사람들, 내 힘으로 도저히 안 돼.
도저히 안 돼. 홍래야. 넌 행복한 거야."


그래. 주님의 힘으로만 되는 것인지, 나도 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신의 그것보다 비교 못 하게 쥐좆만해서,
그런 아픔, 견딜 수 없다. 자신의 피와 살 같은 가족이, 자신의 말을 무시한다고 생각해보라.


난 2009년까지 너무 나만 생각 했다.

그러다 내가 무관심하게 방치한 사람들 하나 둘씩, 다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외려 난 엄청난 관심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내 분수에 안 맞는 관심일지도 모르는데, 난 그것, 부담스러워서 떨쳐내고 싶어했다.
난 너무 내 생각만 했다.


2009년 말미, 일련의 일들, 그래 그것들은 모두 나의 이기심의 소치다. 내 책임이다.

행복한 2010.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말을 걸기 시작한다. 내가 2010년,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 질 수 있는지.


하지만 오늘 일, 새해 벽두, 내가 들은 첫 행복론은 무관심에 관한 것이다. 무관심이 제일 무섭다.


싫고 좋고의 문제를 떠나, 관심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사람 살이에서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관심이 없다면 그걸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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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아, 군생활 할때도 그생각 많이 했어.. 관심이 없으면 그대로 끝. 싫은 것만도 못한 무관심.

    그리고 나, 전역했어.

    2010/01/06 03:00


기사입력 2009-10-29 20:45 | 최종수정 2009-10-29 22:15

[한겨레] [헌재 ‘언론법 결정’ 살펴보니]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대리투표 조목조목 밝혀

“제안설명·질의토론도 빠질수 없는 절차” 강조

헌법학자 “절차적 정당성 부정하고 실체 인정”


헌법재판소는 한나라당의 언론관련법 강행처리에 대해 “심의·표결권 침해”라며 힘차게 칼을 뽑아 들었지만, 결국 법안의 무효 여부는 판단하지 않은 채 칼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일부 헌법학계와 시민단체들은 ‘정치적 절충점’을 찾으려고 헌재법에서 부여한 권한을 스스로 축소 행사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재투표·대리투표 인정 지난 7월22일 이윤성 국회부의장을 허수아비로 만든 방송법 재투표 행위에 대해 한나라당은 ‘출석 정족수 미달이기 때문에 부결이 아니라 표결 불성립’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출석 정족수와 찬성 정족수는 따로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표결 종료 뒤 재적 과반수 출석에 미달했다면 이는 ‘부결 확정’으로 봐야 하고, 이렇게 부결된 의안을 다시 표결에 부친 것은 같은 회기에 다시 처리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또 “전자투표에 의한 표결은 국회의장의 투표종료 선언에 의해 그 결과가 집계되고 종료된다”며, 이 부의장의 ‘투표종료 선언’이 실질적 기준이 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출석 정족수는 국회 의결을 유효하게 성립시키는 전제 요건”이라는 일부 재판관들의 반대 의견이 나왔다.

한나라당이 ‘모니터에 손을 뻗기만 했다’는 논리로 피해 갔던 신문법 무권(대리)투표도 헌정사상 처음으로 인정됐다. 헌재는 그 근거로 △다른 의원의 투표 단말기에 접근하거나 손을 가까이 가져가는 의심 받을 행위가 있었고 △민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원 의석에 앉아 반대투표를 했으며 △정상적인 표결 절차에서 나타날 수 없는 전자투표 로그인 기록이 나타난 점을 거론했다. 반면 일부 재판관은 “인정되는 무권투표는 3건에 불과해 실제 표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의견을 냈다.

헌재는 재투표나 대리투표처럼 ‘눈에 보이는’ 위법성뿐 아니라 제안설명이나 질의토론과 같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의 위법까지 짚었다. 단말기나 전자 의안 시스템 등을 통해 국회 심의·표결 과정이 기계화하면서 다소 간과되는 듯하던 법안 심의 절차에 대해 “표결 절차와 마찬가지로 국회 의사 결정에서 생략할 수 없는 핵심 절차로, 의회주의 이념을 기초로 하는 국회 입법 절차의 본질적 부분”이라며 ‘표결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강행처리 당시 함께 처리된 인터넷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과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해서는 각각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 정치적 제3의 길? 헌재법 제66조는 ‘권한쟁의심판 사건을 결정할 때 권한 침해의 원인이 된 피청구인의 처분을 취소하거나 그 무효를 확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재판관들은 심의·표결권 침해를 인정하고도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해 위법 상태의 시정은 국회의장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무효 부분을 적극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는 신문법, 방송법의 유·무효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이를 판단해 달라는 청구를 기각한 것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헌재 연구관 출신인 전종익 서울대 교수(헌법학)는 “헌재가 권한 침해를 인정했으므로 앞으로의 ‘패’는 정해졌다. 사법적 판단은 끝났고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고 말했다. 반면 김승환 전북대 교수(헌법학)는 “국회가 자율적 판단을 하지 못해서 헌재로 사건이 넘어왔는데 다시 국회로 보내버렸다”며 “헌재는 법률안 처리의 ‘절차적 정당성’은 부정하면서도 ‘실체적 정당성’은 인정하는 모순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헌재 관계자는 “동일한 재판관이 신문법과 방송법에서 서로 다른 결론을 내는 등 쟁점마다 의견이 어지럽게 갈렸다. 이는 정치적 판단이 아닌 법리적 판단을 했다는 방증”이라며 “앞으로 국회가 관련 법을 재입법할 의무가 있는지 등은 학설이 갈린다”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4765.html


헌재 재판관들.... ㅄ?

지금 인터넷에서는 댓글로 이 상황을 패러디하면서 비난이 봇물치고 있다.
물론 법리 판단을 하면서 의견이 갈렸을 수 있지만.

지들이 판단하면 왠지 복잡할 거 같아서 그런 건가. 대체 왜 그런거냐.

늬들...ㅄ?


절차적 정당성이 무너져버렸고, 그것이 권한 침해인 걸 인정하면서, 신문방송법에 대한 유-무효 판단은 기각처리하는 모순은
법리 판단이라기보다, 오히려 한국의 고질적인 미루기 판단인 거 같은데.
김형오 손으로 넘어가면 결과 뻔한 거 아니야? 왜 뒷짐지고 있는거야?

이렇게 된 이상, 우리들은, 장차 조중동과 삼성의 방송장악에 보이콧할 수 밖에 없는 건가?
그런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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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메론 미첼의 두번째 장편, 헤드윅에서 직접 주연하며 기깔나게 노래 부르시던 그 분의 두번째 영화인 '숏버스(2006)'. 필자가 제작년에 이미 '특별한 경로로' 감상한 후 감상평을 적은 적은 있지만, 그 후 제한상영조치에 의해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영화가 드디어 19세미만관람불가 등급을 받고 상영이 시작되었다.


영화가 소개된 것은 2006년 깐느에서 였다. 그 후 존 카메론 미첼이 방한하며 성대하게 시사회까지 치뤘던 이 영화는 법원의 제한상영가 조치에 의해 한국에서는 사실상 상영금지 상태로 3년 동안 허공에서 떠돌게 된다.

숏버스라는 말은 사실, 미국의 은어로 통학버스를 타지 못하는 장애우를 일컫는 말이란다.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제목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데, 어떤 소수자이냐면, '성적 소수자'. 숏버스라는 가상의 살롱에서 벌어지는, 불감증환자, 동성애자, 사디스트, 마조히스트 들의 이야기다. 사실, 이런 단어들을 열거하는 것조차 우리나라에서는 어쩌면 변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한국은 10년 전만 해도,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 논란 속에 판금 조치가 되던 나라다. 그 잣대는 아직도 위정자들 사이에서 존재한다. 아니, 활개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주말 '뉴스 후'에서도 이 같은 사실에 대해 고발한 바가 있는데, 동방신기의 노래나, 과거 신중현의 노래들이 예로 등장하기도 해서 다시금 이런 예술작품에 대한 사전심의에 대해 숙고하게 했다.

어쨌든 이런 판국에 등장한 '숏버스' 의 상영 소식은 나를 기쁘게 했다. 물론 아주 중요한(포르노로 착각하는 인간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장면들이 삭제된 채 였지만, 한국의 '성에 관한 생각들'에 조금 더 도움을 줄 수 있을만한 에너지는 유효한 채였기 때문에 더 만족스러웠다.



영화의 내용은 개인적으로 스포일러성의 글을 싫어하기 때문에 개략적으로만 밝히겠다. 오른편의 이 여배우. 숙인 리. 이숙인씨. 숙인누님. 내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부르고 있지만, 사실 나랑 전혀 모르는 사이. 하지만 상당히 반가운 것은 이 분이 헤드윅에서도 등장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는 주연이라는 사실이다. 괜히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게도 하지만, 여자로서 이런 도전은 스스로에게도 자극적이었을 것 같다. 성불감증을 지닌 성 상담 카운셀러로 등장하는 그녀는 관객을 '살롱 숏버스'에 인도하는 통학버스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보통은 '성적 소수자' 하면 동성애자나 트렌스젠더만 떠올리기가 쉬운데, '성적 소수자'라고 한다면 사실, 우리 모두가 그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소수자는 비단 '성적인 범주'에만 들어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단지 등장인물들을 묶는 소재가 그것이며(사실 매우 중요한 소재이긴 하지만), 그들이 겪는 삶 속의 문제는 장래의 문제이며 현재의 문제, 그리고 생의 지속에 대한 고민이자 사회 속에서 겪는 불안감들이다. 사랑을 할 수 없는 레즈비언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 그런 고민들은 사실 21세기를 사는 인간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소수자들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너도 나도 모두다 그런 고민 속에 빠져 있다. (단지 여기 등장하는 이들이 특별할 뿐)





'살롱 숏버스'는 사실 성적 소수자들이 모여 음담패설과 고어한 플레이를 펼치는 공간이 아니다. 그 곳에서 다양한 계층의, 여러 부류의 인간들이 모여 사회, 예술, 정치 등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고 교류한다. 섹스를 떼어놓고 이야기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 이야기는 오로지 섹스만을 위한, 섹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며, 그들의 주된 문제도 섹스가 전부가 아니다. 일반인이 볼 때 그들에 대한 1차 필터가 섹스일 뿐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이 커플 역시 그들의 '관계의 개방' 에 관한 것이 진짜 문제다.






물론 섹스는 그들 사이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남자 셋이 서로 애무하는 장면이나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자위하는 장면, 채찍플레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 등은 인물들에게 주어진 중심주제가 섹스임을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분명 인물들은 섹스로 그들끼리 소통하는 장면을 만들어내며, 감독은 그것으로 섹스의 문제에 대해 더 생각하게 만든다. 섹스는 인류의 역사에서 어떤 부분인가? 아니, 너에게는 섹스란 무엇인가?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 결국은 해소된다는 이야기는, 사실 글로, 입으로 간단히 말할 수 있지만, 영화 속에, 살아 숨쉬는 배우들을 데리고 이렇게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게, 그리고 충격적이지만 부드럽게 터치하는 건 쉽지 않다, 필자가 예전에 썼던 대로, 존 카메론 미첼은 간단한 감독이 아니다(절대). 하지만 이야기는 소재를 떠나서 매우 부드럽고 코믹하다. 예술성이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할 것이다.
 1970년대의 검열의 잣대를 아직도 들이밀며, 예술작품의 예술성 그 자체를 판단하기 보다 얼마나 야한가를 먼저 따지는 사전심의 제도가 영원히 휴지조각이 되기를 바라며, 숏버스의 국내 상영이 얼마나 파급력을 지니게 될 것인지, 그리고 성공하여 관객들에게 내가 느낀 훈훈함을 역시 던져줄지 계속해서 지켜볼 것이다.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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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야말로 '급기야' 이 영활 다 봤다.
    흠. 글 참 잘 읽히게 잘 썼다.

    그렇지, '살'이 많이 나온다고 죄다 야한 영화일라구-

    2009/11/10 01:02


제 5회 한양영화제가 지난 2009년 2월 28일 막을 내렸다.
이틀 간 조촐하게 학교 시사실에서 개최된 영화제.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는 여기에도 몰아닥쳤다(....라는 신지훈 前 학생회장 曰).
현재 휴학중인 나에겐 거리감이 느껴지는 자리이긴 하다마는, 정작 찾아가보니 동기들도 많고, 가까운 선배와 후배가 오랜만에 등장했지.

조촐하다고 말은 했지만, 구색은 다 맞췄다. 귀엽게. 포토월에, 레드 카펫. 그리고 시사실 앞 흰벽을 메운 데코레이션. ㅎㅎ



아. 사진이 길었다. 사진은 여기서 끝이다. 더이상 초상권은 침해하지 않고 싶어서.

총 14편의 단편영화가 영화제 본선에 올랐다. 그 중 인상 깊었던 작품이 있어 소개한다. DVD는 나에게서 빌려도 좋지만,
빌려주고 싶지 않으므로 사라. 우리 학교 어렵다. 문의는 한양대학교 예술학부 영화과 기자재실(02-2220-1826).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신지훈 감독의 '30:00:00(RUN:RUN:PIZZABOY)'와 조방현 감독의 'Get Out', 이정아 감독의 '남의 속도 모르고'
그리고 이지환 감독의 '우리 형이 달라졌어요'.

먼저 '30:00:00' 은 30분 내에 배달을 해야 하는 배달의 기수에 대한 찬가다. 난 나중에 등장한 좀비들로 인해 장르가 헷갈렸지만,
GV 시간에 감독에게 직접, '배달하는 사람 같이 작은 일에 자부심을 갖는 자들을 존경한다..' 라고 답을 듣고 정리가 됐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어떤 것보다도 '정석적인 영화' 였다고 보는데, 부감과 앙각, 노멀 앵글의 사용 연유가 적확했기 때문이다.
가끔 학생단편을 보다보면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는 앵글 레벨이 보이는데, 물론 요즘 사실적 묘사가 주류라고는 하지만, 20세기 초의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작법은 허투루 만든게 아니란 것이지. 그렇게 찍으면 그렇게 느껴져! 잘 알아두란 말이야!
뭐 앵글도 앵글이지만, 작법 역시 기승전결에 충실했다. 주인공의 등장, 설명, 사건 발생, 사건 진행, 위기, 지연, 결말. 모든 것이 퍼즐 같은 느낌이 들어 아주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반죽을 하다가 슝슝 날아가는 견습생들, '그는 가슴으로, 배달한다.' 라고 선언하는 쉐프, 그리고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배달원.
거의 목숨을 걸고 배달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상당히 '저세상적으로' 다가오는 영화.

조방현 감독의 'Get Out' 은 박카스 같은 영화다. 영상전공자들이 흔히 겪는 '편집 알바'를 하다가 방문한 친구들과 꾸미는 작당모의. 시작부터 거의 '개인에게 국한되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는 듯 하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지금 우리 세대의 모습이 쏙 들어가 있다.
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상상 속 납치와 젊은이들의 껄렁함을 거의 일관된 시선으로 보여주는데, 달리 힘들이지 않고 리듬감만으로 이야기를 나열한다. 가볍고 코믹하다. 게다가 영화제에서는 인기상이었다. 부상은 영화제 디븨디 다섯장이긴 했지만.
감독의 전작들 중 대부분은 본 것으로 기억하는데, 볼 때마다 느끼는 건, 물론 찍을 때는 힘들었겠지만, 많이 힘들이지 않는 이야기를 힘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솜씨가 있다. 물론 이번 작은 약간 '개인적인' 결과물로 보이지만.

'남의 속도 모르고'는 필자의 동기가 만든 영화인데, 졸업작품이다(난 아직이다). 촬영만을 해 오던 인물인지라 꽤 기대를 했다.
달동네, 홀아비 아래 사는 평범한 외모의 처녀와 새로 이사온 '헤퍼보이는(주인공의 말에 따르면)'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해프닝들.
한 여름이라는 배경처럼 시원시원하고 사실적인 시선이 주인공에게 매료되도록 만든다. 흔히 우리가 사는 '도시' 가 아닌 같은 도시인데도 왠지 섬처럼 느껴지는 동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연금술이 느껴진 건 나뿐인가? 하하. 상영 후에 감독과 여배우들의 '가슴노출'에 관해 얘기할 때도, 그것이 퇴폐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분명히 이 영화 안에 사람이 들어가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지환 감독은 '우리 형이 달라졌어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그 사유의 결과물은 영화에 나와있지 않지만, 분명한 건 이 친구는 물건이라는 거다! 일본 개그만화를 떠오르게 하는 캐릭터들은 매니악한 나의 취향에 딱 들어맞았다. 그리고 아주 간단한 트릭을 이용한 영상마술은 깜찍했다.


나머지 작품들이 10편이나 있지만, 그 10편을 다 씨부리려면 내 머리도, 손가락도 힘들다. 나머지는 학과 사무실을 통해 디븨디를 구매하여 볼 수 있으면 좋겠다(사실 안 사도 될 것 같지만... 문의나 해보시길....한양대학교 예술학부 영화과 기자재실:02-2220-1826).


지난 4회에 걸친 영화제들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 없지만 여전히 '실망스럽지는 않은' 수준이어 다행이지만, 요즘 영화과 비전 없다고 우울해하는 사람들도 많고, 실제로 영화판은 우울하다. 그래도 영화라는 거, 학교 다닐 때 아니면 언제 찍어보나라는 심정으로 폐부를 헤집듯이 좀 찍어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졸업하고의 일은 내 알 바가 아니지만, 우리 과 사람들 좀 더 영화에 애정을 지녀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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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가 구속됐다. 진중권 말마따나 개그 같은 상황. 민주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부호 작렬이다.

작은정부니 뭐니 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온갖 환상은 다 갖다붙이던 박쥐정부의 시작이 벌써 1년 지났다.

이제는 아주 자의적이고 유동적인 법 '갖다붙이기'의 법치국가를 만들어 가는 현 세태는 그야말로 '초현실' 인 것 같다.

정말 심기가 거슬렸을거다 사실. 어떻게든 저 인터넷 대통령이라고 불리던 사나이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미네르바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미네르바로 '밝힌' 이상 끝까지 그를 끌어내려야 할테지.

그래서 이런 '작은 정부' 다운 '소심하고 쪼잔한' 작태로 일을 이 지경까지 몰아왔다. 미네르바 구속.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인 이회창마저도

"우리는 법치주의를 바로 봐야 한다. 실정법에 위반하기만 하면 무조건 처벌대상으로 보는 이른바 형식적 법치주의는 합법주의를 무기로 삼아 국민을 억압하던 국가독재시대의 유물이다."

라고 발언하고 있는 이 사태는 박쥐정부의 현주소를 명밀하게 증언한다. '국가독재시대의 유물'.

군사정부시절 만들어냈으나 그 군사정부마저도 사용하지 않아 사장되어가던 법을 굳이 끄집어낼 정도로 정부는 쪼잔하다.

 

난 사실 미네르바의 발언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가 예견한 AIG 사태도 사실 미국 경제에 대한 이해가 있고, AIG의 부실사태에 대한 미국 내에서 퍼지는 적절한 정보만 있다면 떠들 수 있는 내용인데다, 일본 자본의 침투에 대한 예견은 다소 터무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네르바를 잡아들이자는 보수주의자들의 의견이 팽배해졌다. 여당의원도 나서서 잡아들여야한다고 은근 압박을 줬으니까. 박쥐의 충실한 개인 어청수가 가만히 있을리가 있나. 그리고 검찰도 발벗고 나서서 미네르바 잡아들이는데에 적극 동참했다.

결국 워룸의 첫 작품이 탄생했지. 황당했다. 잡아들일 때 적용한 법에 대한 태도는 너무나 쪼잔했기 때문에.

 

그가 발언한 내용이 다소 터무니 없을지라도 소위 '초현실 공간' 인 인터넷 상에서 지껄이지 말아야할 비도덕적인 언사는 아니었다. 허위사실유포에 대한 내용도 사실 한 두가지의 '틀린 단어' 가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단지 그 문제 때문에 잡아넣어야했는가 계속해서 의문부호작렬. 민주주의의 법치구조는 이런 쪼잔함을 열매로 원했던가? 도대체 법치주의란 뭐지? 작은 정부는 속좁은 정부를 말하는 것이었나?

 

진중권의 말처럼, 이제 이런 곳에 글 올릴 때 이 글이 '중요사안인지 아닌지' 를 고려해야 하는 건가?

 

난 잡아가지 마세요. 허위사실 유포나 거짓말은 아니잖아요. 아이고 무서워라. ㅎㅎ

 

도저히 이 이해되지 않는 사태.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정부. 이제 믿을 것은 헌재의 적절한 결정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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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우리모두가 미네르바다!

    Tracked from 컬처뉴스 공식 블로그  삭제

    [편집자가 독자에게]인터넷 글쓰기, 위험에 빠지다 안태호 편집장 ▲ 꼭 지금 정부를 빌란에, 미네르바를 히어로에 빗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기엔 현 정부가 벌이는 일이 조금도 환상적으로 보이질 않거든요. 주말을 미네르바 관련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보냈습니다. 결국 많은 이들의 바램과 탄원과 한숨을 뒤로 한 채 그는 구속되어 버렸더군요. 눈이 벌개지도록 미네르바 관련 기사와 게시판 글을 따라잡으며 참으로 비통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혹시..

    2009/01/1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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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일종의 장난이다. 영화는 인생이다 뭐 철학이다 이런 거 나는 아직 잘 모르겠고, 아직까지는 장난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에 있어서 나는 아직 갓난아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걸 부정하고 있는 체 아는 체 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라는 건, 일반적으로는 서사구조를 가진 동영상을 뜻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 단어를 마주하면 'E.T' 나 '괴물', '노트북' 과 같은 서사영화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걸 보고 나서 재밌었냐 아니냐를 무지하게 따진다. '씨발 그딴 거 필요없어. 영화로 뭔가 보여주겠어!' 라고 말하는 놈조차 재미를 추구하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 '뭔가' 라고 뭉뚱그려 말하면 뭔가 있어보일 것 같지만 그 '무언가' 에 대해 누구나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뭔가' 는 재미일 수 밖에 없다. 유희. 선생이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이 적절한 반응을 보여주면 힘을 얻고 더 많은 걸 알려주듯이, 영화도 같은 것이다. 결국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제작하는 것이 영화다. 하지만 다른 것에 비해 좀 더 사기의 성향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지식이란 건 대개는 불변이지만 영화는 아예 과정 자체가 실은 '무형' 이기 때문이다. 결과 이전까지는 없는 것을 가지고 사기를 치는 것이나 진배없다. 하지만 이 과정 자체에도 우리는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이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창출해내는 것은 아니다. 자빠지고 물 먹고 엿 먹고 좌절하고 울고 난리도 아니다. 나는 이것을 경계한다. 난 기왕에 장난을 할 거라면 성공적으로, 그리고 위대하게 장난을 치고 싶다. 그래서 난 좀 더 성장해야 한다. 갓난아기의 상태로는 어리광 밖에 부릴 수 없다.

 성장하지 못한 미숙아 상태가 아닌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로 장난을 치는 그 날을 위해 난 오늘도 이 미쳐머릴 듯한 마라톤 코스의 출발점을 서성인다. 아니 벌써 출발했다. 하지만 아직 운동장도 못 벗어났다. 진짜 마라톤 코스는 저 밖에서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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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는 집권 초기부터 작은 정부, 자유주의, 실용주의, 민생우선 등을 내세워왔다.

좋다. 정부 작으면 좋고, 자유도 좋고, 실용주의도 민생우선도 좋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정부는 이것 저것 죄다 건드려가면서 만용을 부린다. 작지만 오지랖 넓은 정부랄까. 기실 작지도 않다.

 

좌파 정권이 세워놓은 반 자유주의적인 법률을 바꾸겠다며 진행중인 종부세 폐지안은 모순 그 자체다. 민생우선이라더니.

낙동강 팔아먹은 봉이 형아가 비웃겠다. 자기도 안 팔아먹을 걸 팔아먹었다고.

 

자유주의니 뭐니 하면서 내놓은 것들이 다 이렇다. 촛불집회와 관련해서는 마스크 없애고 집회 선진화를 이룩하자니.

오지랖도 보통 오지랖이 아니다. 자유주의가 정부 마음대로 하는 걸 자유주의라고 하던가? 이젠 오리무중이다. 당최 웃겨서..

 

그런데 얼마전에 최진실씨가 자살했다. 국민여배우, 시대의 아이콘, 가장 아름다웠던 배우였던 그가 죽자 모두 침통해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원인이 어디있느냐가 화두로 올랐고, 이내 악플러들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아, 뭐. 그래.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은 아니었다고 해도, 최초 유포자가 잘못한거라고 해도,

 

사이버 모욕죄를 최진실법이니 뭐니 이름 붙여가며 호들갑을 떠는 수고를 왜 해야 하는 건가?

 

자유주의국가라고, 좌파에게 나라를 넘기지 말자고,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고 하는 사람들이 왜 이런걸 힘들여서 하는 건지.

 

난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국민 전체가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는 지금 못 믿겠으면 아예 죽어라 라는 식으로 이딴 법률들이나 만들어내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 나라의 머리통에 들어 앉아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국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정부를 위한 나라만 있다.

 

 

아 재수털려. 기분 나빠. 최진실씨가 죽지 말았어야 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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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MB식 잔혹동화 같은 한국사회에서 해피엔딩을 바랠 수 있나?

    Tracked from Save the Earth! Fire Blog!  삭제

    MB식 잔혹동화 같은 한국사회에서 해피엔딩을 바랠 수 있나? 그레텔처럼 청기왓집 마귀할멈을 물리칠 꾀가 필요해~ 그림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이란 동화를 다들 알고 계실 듯합니다. 먹고 살기 힘들다(경제살리기)는 이유로 어린 아이들(국민 생명과 주권, 기본권, 인권, 자연 등)을 굶주린 들짐승들이 우글거리는 위험한 숲 속(조중동, 뉴라이트, 신자유주의, 전쟁, 언론방송장악, 비지니스프렌들리, 공공부문 민영화.사유화 등)에 가난한 나무꾼인 남편(국민,..

    2008/10/0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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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E:dea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절한 비유네요.

    2009/01/0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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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공유할 거리라곤 영화 뿐인, 외려 그래서 더 동질감을 느끼는 친구 두 놈과 열심히 예술은 뭐냐, 평론은 예술이냐. 뭐 이런 얘길했다. 덕수군은 '예술은 자기 주장을 피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뭐, 맞는 말이다. 거기서 틀린말 한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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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활동하고 있는 어떤 모임에서 며칠 전부터 '좌파와 음악'이라는 것이 이슈가 되었다. 'All power to the Imagination' 이라는 68혁명의 대표 문구까지 인용되면서 상상력, 예술, 이념, 진정성에 관해서 '자기 주장을 피력' 했다.

거기서 나온 것 중에 '예술이 정치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파급력을 가지는가?' 라는 의문이 있었다. 애초에 제기된 이슈 자체가 '좌파는 왜 거대 자본의 음악만을 소비하고 있는가?' 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의문이다. 한 친구는 '예술이 애초에 파급력이 있었다면 왜 좌파가 예술을 창출하지 않겠느냐' 라는 정도의 이야기를 했더랬다. 난 동의할 수 없었다. 이미 68혁명 이후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예술은 이미 사회적, 정치적인 하나의 '필수 불가결한' 장치로 자리매김 되어있기 때문이다(프랑스 대선 때의 정치가들이 사용했던 선전용 UCC, 음악, 포스터 등을 본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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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이 이런 말을 했단다. '세련됨은 진정성과 전혀 상관없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종강의 '세련됨'이라는 것의 정의가 매우 궁금하지만, 난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매체를 통해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인가? 세련된 것은 그 파급력 자체를 가지지 못한 것인가? 아니 왜? 세련된 무언가가 던져주는 감상은 그저 감상에 불과하다고 치부해버리는 것인가? 좀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하종강도 너무했다고 생각된다. 세련된 것을 비롯한 매체 고유의 적절한 느낌을 대중에게 던져주는 것으로 진정성을 한층 담백하게 혹은 좀 더 고양된 상태로 전달할 수 있다라는 게 나의 그간의 생각이고, 이게 진리다. 하종강의 발언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이 부분은 필자가 오해한 부분으로, 하종강은 '기득권과 노동자 계급의 청강태도' 에 대해 세련됨을 논한 것이었다. 임원진과 노동자가 강의를 듣는 태도에서 임원진은 세련되었고 노동자는 산만했는데, 여기서 임원진이 과연 진정성을 가지고 임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고, 결국 그것이 '세련됨은 진정성과 상관없음' 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의 파급력 역시 존중 되어야 한다. 아니, 난 신봉한다. 예술의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련된 방식으로 만들어 낸 예술 작품 하나가 인간 각자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란 실로 엄청나다. 모든 인간이 예술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 모두가 가진 본능이다. 본능을 존중하자는 이야기다.

이념도 역시 본능과 관련이 있다. 저항의식이나 보수의식 양측 다 본능에 관계된 것이 아닌가? 물론 아주 커다란 부분이 지적인 것에 기대고 있긴 하지만, '더 많은 민주주의를' 이라는 것이나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 라는 것 모두 본능을 자극한다. 이념이 본능적인 것에도 기인하고 있다면, 본능을 가장 잘 자극하는 예술에게 기대어야 하는 것이 합당하다. 또, 변혁하는 예술에 발 맞추는 것도 합당하며, 예술이 가진 '세련된 특성'을 활용하는 것도 합당하다. 만약 그것에 마저도 저항한다면 시대착오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념이 시대착오적인 전달방식을 사용한다면 그 파급력은 '제로'. 그저 혼자 딸딸이 치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이념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을 사용하는' 사회, 문화, 종교, 정치적인 것들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 시대의 이념놀이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진 자 중에 하나로서, 그들이 예술의 파급력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예술이 가진 파급력은 이미 일제 시대에도 크게 검증된 바 있고, 그 전에도, 지금도 그 점은 유효하다. 존 레논을 들먹이는게 어쩌면 과잉일지도 모르지만, 존 레논 역시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예술가로써 자신의 이념을 전달했다. 그 파급력은 알다시피 상당했다.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예술이 예술 안에 갇히지 않기를, 또 정치가 정치 안에 갇히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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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용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종강 선생님의 세련됨과 진정성 어쩌고는 내가 전달한 말이구만.
    헌데 "세련됨"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성격이 발화당시의 맥락과 다르게 쓰이는 것 같아서 정정을 요청해야하는걸까 고민중.
    당시 하종강선생님이 말한 세련됨의 주체는 현대 자동차 임원들이었어.
    그러니까 본인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한테도 임원들한테도 강연을 해봤는데 노동자들에게 강연할때는 엄청 산만했대. 시끄럽게 잡담하기도하고말야. 임원들은 아주 "세련되게" 경청하고 졸지도않고 중간중간 박수도치고 끝나니까 수고했다는 인사까지했다더군. 하지만 그들의 세련된 태도가 얼마나 진정성을 담고 있었을까? 여튼, 내가 말했던(정확하게는 전달했던) 세련됨이라는건 "태도"를 말한거지 "형식"을 말한건 아니라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듯 하네ㅎㅎ

    2009/06/24 22:55

거실

일종의정신병 2008/06/11 15:10 by filmical

빨간 소파 위에서 자고 있는 아비. 사실 자고 있는 게 아니라,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많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빨리 아들이 일을 나가버리고 속 편하게 눈을 뜨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아들은 좀처럼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눈을 감고 자고 있는 척을 한다.
거실은 지금 조용하다. 불과 30분 전, 기가 막히는 3파전(사실 아들과 아비의 1대1이었지만)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자리였다는 걸 알 수 있는 건 널부러진 서류가방과 담배, 펜, 재떨이와 넥타이, 아들의 살점 뿐,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저 일을 마친 회사원이 다 내팽개치고 낮잠을 즐기는 장면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들은 방에서 혼자 맹렬히 타자나 두들기며 자기 일에 심취해 있고, 어미는 나가기 위해 이것 저것 짐을 꾸린다. 살을 맞대고 말 그대로 으르렁 거리고 흐느꼈던 30분 전의 그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평소대로 움직일 따름이다. 하지만 각자의 기분은 상처 그 이상의 것을 가진 채 고양되어있는 상태다. 누군가 하나라도 전기를 일으킨다면 다시 무시무시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세 명 모두 그것을 알기에,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다.

아들은 아비도 어미도 밉지 않다. 미운 감정이란 유치하고 가벼운 감정이며, 단계가 낮은 감정이기 때문에 밉지 않다. 불쌍하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이미 자신 역시 그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동정이라는 감정은 걸맞지 않다. 그저 무덤덤하다고 믿고 있다.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저 어제처럼 움직이리라 다짐하고 있다. 30분 전의 사투 아닌 사투는 자신을 망가뜨리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 자신의 강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육체적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마음 속으로는 지구 어딘가에서 주저 앉아 끝 모를 울음만 뱉고 있는 자신을 수 없이 상상한다. 자고 있는 아비를 깨울 엄두도 나지 않는다. 또 어떤 폭풍이 몰아칠지 알 수가 없다. 가늠을 할 수 없는 파탄의 지경에서, 아들은 속으로 계속 흐느낀다.

조용히 밥솥에서 밥을 뜨는 어미는 남편과 아들의 그릇도 퍼 놓고 식탁에 앉아있다. 나갈 채비는 다 하였으나 도저히 나가고 싶지 않다. 아들 둘을 키우는 기분이란 것을 이런 식으로 느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차라리 둘 다 아들이었다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아들이 바람을 피우건 말건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바람을 피운 건 분명히 자기 남편이기 때문에 오열을 멈출 수가 없다. 그래도 참고 밥을 뜬다. 하지만 먹으라고 부르기가 겁 난다. 도저히 건드릴 수 없는 사이가 된 남편의 눈 감은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오열을 삼킨다. 자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남편은 모두가 자신이 자고 있다 생각할 거라 믿고 있다. 그 생각이 미치니 참을 수가 없다. 이토록 유치하게 벌써 25년을 살아왔단 말인가. 기가 막히고 기가 막혀 김치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 이 맛도 기가 막힌다.



아비와 싸워 본 적이 있는가. 난 오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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