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길다. 오늘은 참 길다. 오늘 오늘 오늘. 오늘은 늘 길고 지루하다. 그래서 내일이 짧아질 거란 허무맹랑한 기대를 한다.
안경에 김이 서린다. 중부지방 한파. 기록적인 폭설. 103년 만의 최대 적설량.
나는 이 절호의 시기에 영화를 찍지 못 해 아쉬워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에 맞춰 추위는 내 외로움을 부채질한다. 부글부글. 추위 주제에 끓게 만들다니 괘씸하다. 무찌르고 싶다.
안경에 김이 서린다. 노량진 역 서울방향 10-1에서 열차를 기다리면서 안경에 김이 서린다.
그 김 서림은 열차에 오른 뒤에도 한참 지속된다. 김서림은 오래 지속된다. 김서림이 불어로 뭘까?
열차 문이 닫히고 우리집 현관이 열린다. 나는 문득 내 방과 그대의 방을 번갈아 쳐다본다. 여전히 안경에는 김이 서려있다.
서려 있는 김을 유지하고 싶어서 집을 계속 춥게 유지한다. 덕분에 난방비는 1587원. 씻을 때는 따뜻하게 씻어야지 않겠나?
내 안경은 명쾌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난 내 네 개의 눈으로도 똑바로 보지 못 하고 있다. 차라리 계속 김이 서려있는 것이 낫다.
그렇게 다시 난 그대의 방을 바라 본다. 그리고 옷을 벗는다. 유일하게 나를 향해 짖어주는 강아지 지니 앞에서.
양치질을 하다가 잇몸에서 피가 나온다. 입을 깨끗하게 헹구고, 치실로 치아를 깨끗하게 한다.
치실. 그래. 그대는 내게 계속 치실을 쓰라고 했었다. 난 이제 치실을 사용한다. 난 씻다가 말고 다시 그대의 방을 바라 본다.
안경에는 김이 서려있다.
그리고 난 다시 씻는다. 손도 박박, 사타구니도 박박, 겨드랑이도 박박, 얼굴은 손가락 끝으로.
그대는 그랬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알아? 당신은 거기 나오는 선생님 같아. 답답하고 고리타분하지만 귀여워. 그래서 사랑해."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너무 기뻐서 울었다. 안경에 김이 서렸다.
하지만 지금 이게 다 뭘까? 다시 난 그대의 방을 바라본다. 그리고 내 방으로 들어 간다. 그리고 그대가 누워있다.
그대의 목을 바라본다. 내가 정말 그랬단 말인가? 믿을 수 없어 안경에 김이 서린다.
그리고 내 안경은 피로 뒤덮일 것이다.
지니에게 오늘은 고기를 먹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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